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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 구 <수운교 교리연구위원>
1. 21세기와 민족종교
2000년 새해 새 아침의 흥분도 가라앉은 지금이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새
천년속의 21세기를 내다 보려한다. 먼저 지나온 1백년의 20세기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대한 회고와 반성은
미래를 설계하는데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지난 우리 민족사 100년의 성격을 결정짓는 대사건을 간추려 말한다면, <일제의
침략>과 <남북한의 전쟁>을 들 수 있다. 그 침략은 임난이후 3백년만에 다시 당한 민족적 시련이었다. 또 남북한의
전쟁은 고려의 통일이후 1천년만에 겪은 민족적 고통이었다. 불행하게도 한민족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20세기에 한꺼번에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국민족종교가 종교적 면모를 갖추고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두
20세기 초였다. 민족종교는 이런 민족적 시련과 고통의 그 현장 속에 있었고, 또 그 현장의 맨 앞에 민중과 함께
서 있었다. 이처럼 20세기에 민족의 운명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던 민족종교가 21세기에 진입중이다. 그
미래 또한 민족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속에 놓여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한국 자생종교들이 민족종교란 말을 쓰고 있는
것에서 스스로 역사적인 사명을 자각하고 민족과의 운명적 관계임을 언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21세기가 미형미현(未形未見)속에 있다 하지만, 20세기의 이형이현(已形已見)을
통해서라도 그 바른 자리를 매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세기를 특징지은 시련과 고통은 지난 100년 동안 한민족의
불행했던 삶의 총체적 표현이다. 그런데 이를 종교적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은‘죽음에의 공포’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죽음은 자연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강요당하는 공포였던 것이다. 이 공포 앞에 인간은 가장 무력해지고 비참해진다.
변절, 비양심, 인륜파괴, 굶주림, 아비규환, 갈등과 원한, 삶의 포기, 급기야 죽음에 까지 이른다.
그런데 그 죽음에의 공포가 20세기에 완전히 해방되지 않은 채로 21세기의 숙제로
넘어가고 있다. 더더욱 그로 인해 희생당한 민중에 대한 근본적인 해원 역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말이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남북의 분단상황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불연기연(不然其然)한 사이에 21세기로 넘어 가고 있는 것이 이를 부정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이런 죽음에의 공포로부터 민족을 해방하자는 운동이 스스로 그 사명을 깨달은 민족종교에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이다.
2. 민족종교의 모태인 동학의 역사적 성격
대개 한국에서 민족종교로 불리는 자생 신종교란 東學이후 한국에서 창립된 종교를
말한다. 1860년 수운 최제우 천사가 동학을 창시한 이래로 수많은 종교들이 창립되었는데, 이 종교들을 과거의 종교들과
구분하여 신종교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종교란 용어가 발생론적 개념이라는 한계를 지닌 반면에 민족종교란 용어는
시대적 산물로 생겼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소명까지도 자임하려는 강한 의지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 힘의 원천은 바로 동학의 보국안민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한국민족종교의 모태가 되어 온 동학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21세기에 나아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두가지 운동을 그 안에 내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보편적 이상을 구현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이 요청하는 바를 추구하려는 것인데, 이를 종교의 이중운동(Dual
Movement of Religion)이라고 한다.
이런 차원에서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해온 동학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세기
우리 민족의 심령을 부당하게 지배해 온 ‘강요된 죽음에의 공포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는 일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이중 운동중에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특수주의라 할 수 있고, 또한 생명활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생명의 온전성(穩全性)의 구현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보편주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동학은 생명을 주제로
두가지 역사적 성격을 안은 채 21세기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죽음에의 공포로부터의 해방 즉 강요된 죽음을 거부하는 운동은 한국에서 다분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한민족을 죽음의 공포로 내몰았던 그 정치 사회적 요인인 <외세의
침략>과 <남북한 전쟁>으로부터의 해방인데, 그것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되찾고, 내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화합과 통일>을 이루어내는 것을 뜻한다. 독립, 화합, 통일은 동학의 목적인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현실적
실천덕목이라 할 수 있다.
수운천사는 당시(1860)의 사회상을 “天下紛亂 民心淆薄”(『동경대전』 논학문)이라
하였고, 또 국제관계를 “攻鬪干戈”(논학문), “攻取天下 戰勝攻取”(포덕문)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輔國安民”(포덕문,
권학가)을 제일 우선으로 삼았다. 조선의 운수가 “기험함을 한탄하고 조선의 玉璽奉命者”(『용담유사』 안심가)로서 “입술이
떨어지는 탄식”(脣亡之歎:포덕문)이 있을 20세기의 민족적 위기를 미리 내다보고 앞서 저항한 것이다. 동학혁명과 3·1운동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보국이란 외세침략에 대한 대응전략이며, 시천주 사상은 외세의 충격에 대한 정신적
대응의 의미를 갖는다.“개같은 왜적놈”(안심가)이란 극언에서 알 수 있듯, 의관을 갖춘 선비의 한사람으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안민이란 보국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안민은 민중의 생명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攻鬪干戈 攻取天下 戰勝攻取로부터 무참히 희생당할 민중의 생명 보전이라는 절명적 절규가 바로 안민이었다. 이 안민의
삶의 모습이 바로 長生(포덕문,수덕문)이라 할 수 있다. 장생은 자연적 무병장수의 의미뿐만 아니라, 손상되지 않은
온전한 삶의 뜻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종교로서의 동학은 인간생명의 온전성 구현이라는 종교의 보편적 운동에도
함께 가야 한다. 이러한 온전성 구현은 그것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낙태문제, 사형제도, 유전자조작, 생명복제,
생태계 파괴 등의 부당한 사회 환경을 거부하고 개선시키는 외적 측면과 다른 하나는 인간 내면의 靈性을 심화시키는 내적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내면화를 동학에서는 하늘님 모시는 시천주 수련이라고 한다.
동학에서는 인간생명의 온전성이 구현된 주체적 인간상을 최령자(最靈者)(논학문)로
보고 있다. 이를 동학의 생성적 우주관으로 볼 때, 최령자란 완성적 인격체로서의 최령체(最靈體)를 의미하는데, 이는
천지인 삼재의 원리속에서 인간의 주체적 참여와 그 역할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사람이 천지와 더불어 우주의 생명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 바로 시천주의 3·7자 주문이다. 이 주문중에서 핵심이 되는 말은 <侍天主造化定>으로,
이는 사람이 하늘님을 모시는 侍存人으로 거듭 태어나야 우주의 창조적 조화에 참여(造化定)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역학적으로는 感通至神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동학의 두 가지 역사적 성격은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오늘날에 더욱
회피할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3. 수운교 신앙의 특징
수운교는 1923년(癸亥) 10월15일 교주 출룡자가 서울에서 개교하였다. 얼마
뒤인 1929년에 현재의 대전 금병산하로 본부를 옮긴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개교 77주년을 맞은 수운교의 진로를 모색하는 일은 동학의 큰 틀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동학의 두가지 성격을 요약하면, 안으로 侍存的 最靈者를 지향하고, 밖으로 강요된 죽음의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輔國安民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 수운교 신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동학과 수운교의 기본신앙은 侍天主이다. 수운천사의 侍天主 신앙은 불변의
진리이다. 스스로 표현한 바와같이 今不聞古不聞之事요 今不比古不比之法(논학문)이다. 시천주란 하늘님을 내 몸에 모시는
것이다. 하늘님을 내 몸에 모시면 하늘님 마음과 수운천사의 마음, 수운천사의 마음과 내 마음 사이에 하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는 共鳴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수운천사가 말한 心學의 뜻이다.
열석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
하늘님을 모시면 안으로 신령이 있고(內有神靈), 밖으로 기화가 일어난다(外有氣化).
안과 밖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신령이 있으면 기화가 일어나고, 기화가 일어나면 신령이 생기는데,
그 속에서는 언제나 하늘님의 음성이 메아리 친다. 그래서 사람이 그 마음을 이리저리 옮길 수가 없다. 언제나 하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추듯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을 各知不移라 한다. 守心正氣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인과 의와 예와 지는 옛 성인이 가르친 바요,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다.
수심이란 안으로 신령을 잘 모시고 지키어 영글게 하는 것이요, 정기란 밖으로 기화함이
잘 이루어지게 몸의 기운을 바르게 펴는 것이다. 이렇게 수심정기로써 신령기화하면 吾心卽汝心(논학문)의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둘째, 동학의 수운교는 이 오심즉여심에서 한걸음 나아가 불천심일원(佛天心一圓)을
말한다. 하늘님은 “세상사람이 부르는 상제를 곧 나”(포덕문)라고 선언한 것과 같이, 또 천지음양이며 그 조화의 자취인
“귀신도 나”(논학문)라고 선언한데 이어, 마침내 수운교에 이르러 불즉천(佛卽天)으로 발전한다. 다음은 교주인 출룡자의
친필 문헌이다.
출룡성군 이리저리 사방산천 우거진 청산첩첩
미타동에서 온, 온갖 새 울음소리 선인군자 마음
心자를 밝혀내어 太極性을 깨쳐내어 선인군자
도통군자 誠敬으로 깨달아 내니 그도 역시
佛天心이 아닐런가
다시 말하면 마음의 근본자리를 깨달으면 불과 천과 심이 일심으로 일원이라는 뜻이다.
이는 오심즉여심의 근본심에서 보면 불심과 천심과 인심의 三元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같다는 말로 마음의 내면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하늘님 말씀하시되, 儒라 佛이라 仙이라 基督이라
하는 것이 도무지 이것이 내(吾)이니라
또 이를 종교적 심성론으로 보면, 위와 같이 유불선과 기독이 하나라는 뜻으로 발전한다.
여기에 불천심 일원을 종지로 한 수운교 신앙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4. 결론
한국종교들은 전통적으로 천지인 三界의 합일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 왔으며, 이런
조화와 융합을 특징으로한 한국인의 사유형식이 정보화 지구화로 나타나는 새 천년에 사회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유리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 20세기 초 우리 민족종교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開闢을 제창해 왔고, 그 개벽의
밑바탕에는 相生과 解寃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 왔으며, 한국의 易學도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왔다.
불천심 일원의 신앙은 역학적으로는 대대적(對待的) 원리와 마음의 상함성(相含性)을
뜻하며, 한국민족종교의 조화원리와 동학의 “천지인 三才之數”(논학문)의 원리로 모든 대립적 구조를 뛰어 넘는다. 그런데
불천심은 동학교단내에서도 발전된 신앙형태이지만, 그 밑바탕에 해원사상을 지니고 있다는데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다.
출룡성군자 천상천하의 도솔천궁(兜率天宮)을 지상에
건설하시니, 지상 도솔천궁은 개벽후 오만년지의
초유지사이요, 자고유래로 무주고혼을 解寃해를,
세계의 왕생극락을 해원해 주시니 만고의 불유지법이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동학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역사적 성격속에 21세기를 함께
할 수운교는 안으로 불천심일원의 三才 조화사상으로 시천주신앙을 더욱 심화하여 최령의 인격완성에 정진하고, 밖으로 1백년
동안 죽음의 공포로 희생당한 수많은 무주고혼을 해원하는 영적운동이 일어나 천상세계의 평화를 도모하고, 나아가 강요된
죽음에의 공포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위해 독립, 화합, 통일의 보국안민에 기여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경신득도시에 하늘님이 수운천사에게 내린 첫 말씀이 “물구물구(勿懼勿恐)하라”(포덕문
안심가)는 것이었다. 이 말속에서 하늘님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해 평화와 평안을
가져오는 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없는 새 세상의 건설을 앞당기는 일은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다. 새 세상의 주인은 바로 하늘님을 모신 최령체(最靈體)인 안민(安民)들이다.
<출전: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새천년 민족종교의 진로』2000. pp.1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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