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성공이후, 종교적 단상
-종교인의 역할과 동학인의 사명-

이 찬 구(수운교 도성암 선교사)

제17회 2002월드컵축구대회가 성공리에 끝났다. 월드컵대회가 열린 지난 6월 한달 동안 우리는 역사상 일찍이 체험해 보지 못한 환희와 감동을 맛보았다. 한국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으로 또는 길거리 응원장으로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갔다.
마치 3.1운동당시 서울 탑골공원에 달려갔던 조선인의 비장함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경기가 한국팀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에는 모두가 얼싸안고 거리로 질주하며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마치 8.15해방을 맞는 그런 찐한 감동이었다. 10대나 20대는 물론이요, 한번도 가슴펴고 기쁨을 누려보지 못한 기성세대들도 가슴찡한 감격을 함께 맛보았던 것이다.

특별히 8강진출을 확정지은 6월18일 대전경기는 필자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만약 한국이 D조 1위로 올라가면 대전에서 8강진출을 다투게 되고, 2위가 되면 전주에서 시합을 하게 된다. 대전경기장은 우리 수운교가 소재한 유성에 있는 경기장이다. 필자는 "수운천사님께서 수운교가 있는 유성에 불러 주시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해 보았다. 마침내 1위로 올라가 대전에서 이탈리아와 겨루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전쟁이었다. 처음에 이탈리아에 뒤지고 있을 때, 필자는 어떤 확신을 갖는 기도체험을 하였다. "수운천사님께서 한국팀을 대전에 불러 세계인을 위한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어찌 지는 잔치를 하실까?"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중에, 후반전이 다 끝나갈 즈음에 동점골이 터졌다. 꿈같았다. 모든 눈들이 그 골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전에서 진다면 한밭벌의 잔치가 무산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경기결과는 아는바와 같이 한국팀이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하였다. 극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국팀이 넣은 두골은 신(神)이 넣은 꼴 같았다. 필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천사님은 의심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긴박한 체험을 통해 다시금 천사님에 대한 믿음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님은 임오년의 개벽잔치의 중심을 대전 유성으로 점지했다는 확신 말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의 성공에는 세 사람의 주역이 있었다. 하나는 선수당사자인 태극전사 23인, 히딩크 감독, 그리고 붉은 악마로 불린 응원단이라 할 수 있다. 이들 3자의 공통점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남모르는 준비과정에서 흘린 땀방울의 수는 판 밖에서 성원을 보낸 일반 국민으로서는 사실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특히 붉은 악마단의 결성과 성장과정을 통해 한 조직의 성공비결을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 좌절을 극복해 가는 강인한 추진력에 일반국민은 마력에 끌린 듯이 붉은 악마의 함성에 빨려들어 갔다. 그 붉은 악마는 다시 태극 호랑이(한국팀의 공식 심볼은 호랑이임)와 운동장에서 한 몸이 되었고, 그 순간에 붉은 악마는 악마가 아니라, 호랑이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둔갑하였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의 성공에 또 하나의 숨은 주역이 있었다. 월드컵 이후에 그 수많은 찬사의 대열에 한번도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종교계이다.
이번 월드컵대회 개최 이전에 종교계는 자발적으로 성공축원기도를 가졌다. 가히 범국민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월드컵 성공축원기도는 전국 곳곳에서, 교단과 종파를 초월하여 봉행 되었던 것이다. 월드컵의 성공은 월드컵 개최이전에 이미 판명난 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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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의 경우는 4월19일부터 5월9일까지 21일간 2천여명의 교인이 이 기도에 동참하였다. 천도교도 21일간(3.15-4.4) 기도봉행 하였다. 불교계는 성공을 기원하는 전국불교 대법회(4월9일)를 국립극장에서 가졌고, 개신교계에서도 상암경기장에서 연합예배(3월31일)를 가졌다. 그 밖의 수많은 종교계의 기도를 여기에 다 열거할 수 없다. 이런 일련의 기도속에 2002월드컵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미 신명의 잔치였던 것이다.

한편 이번 월드컵대회를 통해 우리는 동학인으로서 주목할 일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속에 감춰진 ∼이라는 문자표이다. 전국민은 물론 외국인에게까지 불리고, 쓰여진 "대∼한민국"속의 "∼"는 새 을(乙)자를 옆으로 뉜 것이다.
또 그동안 신성시된 나머지 가정의 서랍 속에 깊이 보관되었던 태극기가 응원도구로 사용되고, 뿐만 아니라 응원복으로까지 활용되는 등 국민의 실생활에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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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새 을자와 태극기는 포덕문에 있는 하날님의 말씀속에서 그 오묘한 뜻을 나름대로 찾아 볼 수 있다. 즉 "나에게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太極)이요, 또 그 형상은 궁궁(弓弓)이다"(포덕문6, 수운교 경전22쪽)고 했다. 영부는 하날님의 신비로운 조화의 물형부이다. 이 조화의 영부가 태극이며, 또 궁을(弓乙)형상이라는 것이다.

수운천사께서 1860년에 동학을 창도한 이후에 태극과 궁을은 다른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 당시에는 주로 궁궁을을의 이름으로 하날님의 영부가 나타났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와 1945년 해방당시에는 태극기의 태극문양으로 하날님의 영부가 나타났다가, 이번 월드컵대회에는 하날님의 영부가 태극과 궁을의 형상으로 동시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날님의 조화는 무왕불복(無往不復)의 이치와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원리에 의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의 4강조차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다시금 임오년(1822)에 탄강하신 수운천사의 3회갑(180)이 되는 해에 열린 임오년(2002) 월드컵을 생각해 본다. 또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일마다 동학의 하날님에 의해 섭리되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월드컵의 섭리가 통일로 이어지도록 성경신을 다해야할 시대적 사명이 동학인에게 있지 않는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끝>


<<수운교 발행 수운 교보 제24호 2002. 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