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은 진리의 광장입니다. 진지하고 성실한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글쓴이:수운교인 東經大全 修德文(수덕문) 조회수:2008


원 형 이 정은 천도의 떳떳한 것이요,오직 한결같이 중용을 잡는 것은 인사의 살핌이라.
그러므로 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공부자의 거룩한 바탕이요, 배워서 아는 것은 예전 선비들이 서로 전하여 온 것이라. 비록 애써서 얻어진 얕은 소견과 엷은 지식이라도 모두 우리 스승의 성한 덕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선왕(先王)의 옛 법을 잃지 않음이니라.


내가 동방에서 나서 부질없이 세월을 보낸지라. 겨우 가문의 이름을 보전했을 뿐이요, 빈한한 선비 신세를 면치 못했노라. 선조의 충의는 절개가 용산에 남아 있고, 우리 임금의 성한 덕은 해가 다시 임(任)병(丙)에 돌아왔더라. 이와 같이 남은 음덕이 끊기지 않고 흘러와서 가군(家君)께서 세상에 나시어 이름이 한 도에 덮였으니 모든 선비들이 모르는 이가 없고 공덕이 여섯 대나 계승 되었으니 어찌 자손의 남은 경사가 아니겠는가.

슬프다. 학사(근암공)의 평생은 세월이 봄꿈과 같이 흘러가서 나이 사십에 이르매 공부한 것은 울타리 가에 내던진 물건으로 아시고, 마음에는 벼슬할 뜻이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귀거래사 를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각비시의 글귀를 옮으셨더라.

지팡이를 이끌고 나막신을 신은 것은 마치 처사의 행색과 같고,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풍도가 아님이 없더라. 구미산의 기특한 봉우리와 괴상한 돌은 월성과 금오산 북쪽에있고, 용추의 맑은 못과 보배로운 시내는 옛 서울 마룡동 서쪽에 있더라. 동산의 복숭아 꽃은 고기잡이 배가 알까 두려워 하고 집 앞의 푸른 물결은 뜻이 태공의 낚시질에 있었더라. 난간이 못 가에 다달은 것은 염계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 한 것은 어찌 제갈을 모앙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세월의 흘러 감을 막을 길이 없어 슬프게도 하루 아침에 돌아가심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은 나이 겨우 열 여섯이라. 무엇을 알았으랴. 어린애나 다름이 없었더라. 선고(先考)의 평생사업은 불 가운데 흔적조차 없어지고 불초한 자손의 남은 한은 세상에서 낙심하게 되었으니 어찌슬프지 아니 하며 어찌 아깝지 않으리오.


마음이 가정지업에 있으나 어찌 심고 거두는일을 알 수 있으며, 글 공부도 독실하게 못하였으니 생각에 벼슬할 뜻도 없었노라. 가산이 점점 쇠퇴해 가니 나중 일이 어찌 될 것을 알 수 없고,나이는 점점 더해가니 장차 신세가 군졸해질 것을 탄식할 따름이러라.
팔자를 헤아려 보매 또한 떨고 굶주릴 염려가 있고 사십평생 해온 일을 생각해 보니 어찌 성공못한 탄식이 없겠는가. 집 한칸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뉘가 천지가 넓다고 하겠으며 하는 일마다 서로 어긋나고 보니 스스로 이 한몸 간직하기 어려움을 어여삐 여길 뿐이로다.
이로부터 세상의 분요함을 파탈해 버리고 가슴속에 얽히고 설킨 생각을 씻어 버렸노라.


용담의 옛집은 가엄(家嚴)께서 가르치던 곳이요, 동녘 서울 새로된 마을은 오직 나의 고향이더라. 처자를 데리고 옛터로 돌아온 것은 기미년(1859)시월이요, 운수룰 타고 도를 받은 때는 경신년(1860)사월이라. 이 또한 꿈같은 일이요,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로다.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보고 삼대적 하늘 공경하던 이치를 자세히 읽어 본즉 오직 옛날 선비들이 천명에 순종한 것을 알겠으며, 후학들이 잊어버린 것을 스스로 탄식할 뿐이로다. 닦고 다듬어 보니 자연아님이 없더라. 깨닫고 보면 공부자의 도는 한 이치로 정한바요, 나의 도로 말할진대 대체는 같으되 약간 다름이 있느니라. 그 의아를 버리면 사리의 떳떳함이요, 고금을 살펴보면 인사의 할 바니라.


포덕할 마음은 두지 않고 지극히 정성드리는 일만 생각한지라. 그럭저럭 미루다가 다시 신유년 을 만났으니 때는 유월의 여름철이더라. 좋은 벗들이 자리에 차매 먼저 그 법을 정하고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물으매 또한 포덕을 권하도다.


*[주] 신유(1861년)6월에 포덕을 시작하시니 이를 <신유포덕>이라함.

가슴에는 불사약을 지녔으니 그 형상은 궁을이요, 입으로는 장생하는 주문을 외우니 그 글자는 스물 한자라.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맞아들이니 그 수효가 그럴듯하며 자리를 펴고 법을 베푸니 그 맛이 그럴 듯 하도다. 관 쓴 사람이 나왔다 물러갔다 함은 마치 삼천의 반열인 듯 하고 동자들이 절하고 읍하는 것은 제법 육칠의 읊음이나 있는 듯 하도다. 나이 나보다 높은 이가 있으니 이는 또한 자공의 예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어찌 중니(仲尼)의 그것과 다름이 있겠는가.


인 의 예 지는 옛 성인들의 가르친 바요,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라. 한번 입도 치성을 드리는 것은 길이 모시겠다는 중한 맹세요, 모든 의혹을 깨쳐버림은 정성을 지킨 까닭이니라. 의관을 바르게 차림은 군자의 행실이요, 길에서 먹으며 뒷짐을지는 것은 천한 사람의 버릇이니라. 도 믿는 집에서 먹지 않는 한가지는 네발 짐승의 나쁜 고기요, 몸에 해로운 것은 또한 찬물에 갑자기 앉는 것이니라. 유부녀를 막는 것은 나라 법으로 금하는 바요, 누어서 높은 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은 우리의 정성된 도에 태만을 보임이니라. 그렇듯이 펴니 이것이 여덟가지 법칙이 되느니라.

*[주]계미판본에 修心正氣(수심정기)라 하였으나 守心正氣(수심정기)를 병용함

아름답도다. 우리 도의 행함이여, 붓을 던져서 글자를 이루니 사람들이 왕희지의 필적인가 의심하고, 입을 열어서 운을 부르니 뉘가 나무꾼 앞에인들 굴복하지 않겠는가. 허물을 뉘우친 사람은 욕심이 석숭의 재물에 미치지 아니하고, 정성이 지극한 그 사람은 다시 사광의 총명을 부러워 할것이 없더라. 용모가 환태됨은 신선 바람이 불어 왔는가 의심하고, 오랜 병이 저절로 나음은 편작의 어진 이름도 잊어버릴만 하더라.

*[주]계미판본에 司曠(사광)이나師曠(사광)으로도 씀


비록 그러하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지라. 혹 흘러가는 말을 듣고 닦으며 혹 흘러다니는 주문을 들어 외우니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구태여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br />
그립고 그리운 나의 생각은 간절치 않는 날이 없고 빛나고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여 그릇칠까 두려워하노라. 이 또한 직접 만나지 못하는 탓이요,사람이 많은 까닭이니라. 먼 곳에서도 마음과 마음은 비치어 응하지만 또한 서로 그리운 회포를 견디지 못하겠고, 가까이 만나서 정회를 펴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받을 혐의가 없지 않으므로 이글을 지어서 펴 보이노니 어진 그대들이여, 삼가 내 말을 자세히 들을지어다.


대저 이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정성이 되느니라. 믿음(信)으로 정성이 되는 것은 사람(人)이말하는(言) 것이니 그 말하는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으므로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리되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정한 뒤에는 다른 뒷말은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니, 이와같이 닦으면 이에 그 정성을 이루느니라.
정성과 믿음은 그 법칙이 멀지 않으니 사람의 말로써 이루는 것이니 먼저 믿고 뒤에 정성하라.내가 지금 밝히 가르치노니 어찌 믿음직한 말이아니겠는가. 공경으로써 정성을 다하여 가르치는말씀을 어기지 말지어다.


수운교 경전 51쪽~65쪽 수덕문

수강 186년 4월 12일(丙子)

수운교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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